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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바자르에서 나와 일행은 성소피아 성당으로 향하였다. 최대의 전통시장 옆에 세계적 명소인 성소피아 성당이 서있는 것이 화려한 명동상가 위에 명동성당이 있는 것과 오버랩되기도 했다.

     

    성소피아 성당은 그리스어로는 하기야 소피아’ ‘아이아 소피아 아야 소피아’로 불리며,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밤에 보는 성소피아 성당은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다가오며 웅장했다. 서울에서 보던 성당들과는 크기부터가 달랐다. 주위의 조명은 그리 밝지 않았으나 어두움 속의 중앙돔과 4개의 첨탑을 멀리서 볼 때 역사적 현장에 온 경이감과 함께 역사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에는 원래 첨탑이 없는데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사용하면서 세워진 것이다. 오스만제국이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시점으로 서양의 역사는 중세와 근세로 나누어진다.

     

     

    이스탄불은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다.. 이곳에 위치한 성소피아 성당은 573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령으로 66년 만에 완공된 당시 세계 최대 성당이었고 동로마제국의 상징과도 같았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헤메트 2세는 천신만고 끝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다고 한다. 중세의 막바지였던 당시는 종교의 시대였다. 비잔티움 제국으로도 불린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마지막 예배를 이곳에서 드렸었다.

     

    이슬람교도인 메헤메트 2세로서는 동로마제국의 종교적 지주인 이곳을 차지하는 것은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소피아성당은 당시의 관행인 점령군에 의한 3일간의 약탈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성소피아성당을 둘러보고 곧바로 이슬람 사원임을 선포하였고, 성당이 이슬람 사원화하면서 4개의 탑이 세워졌다. 이슬람 사원의 탑은 미나렛이라 부른다.

     

    일행 중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써야 했다. 입장료는 박물관일 때는 유료였는데 이슬람사원이 되면서 무료가 되었다고 한다. 성당 입구를 지나 본당에 이르니 성당의 내부공간은 비잔틴 건축 양식의 진수답게 매우 넓고 높았으며 화려하였다. 기둥 양옆으로 통로공간이 있고 4개의 큰 기둥들은 30m 넓이의 중앙돔을 받치고 있으며, 중앙돔에는 채광 목적의 수많은 창호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창호로 들어오는 빛이 엇갈리며 신비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고 하며 이는 비잔틴 양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아쉽게도 밤에 간 탓으로 볼 수 없었다.

     

     

    2층은 신자석이 넓게 배치되어 있으며, 지진으로 휘어진 기둥을 볼 수 있었는데 무너지지 않고 1400년을 유지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중앙돔을 받치는 4개의 큰 기둥밖에 부벽을 돌로 쌓아 지진의 충격을 완충하게 한 것이다. 당시 최고의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참여하여 내진설계를 한 덕분이었다.

     

    성당에 들어가면 제일 뒤쪽에 있어야 할 제단은 없었고, 메카를 향한 곳에 황금색 모습의 미흐라브와 같은 이슬람교 상징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흐라브는 메카쪽을 알리는 표식이다. 쿠란 구절로 사원을 장식하면서 이슬람교의 상징색인 녹색 바탕의 판에 쿠란구절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교의 상징물들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성당 벽면의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상이었다. 이곳이 회교도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모든 우상을 없앤다고 하면서 파괴될 뻔했었는데 다행히 없애지는 않고 그림에 회를 덮어 가리도록 했었다. 비잔틴 모자이크는 휘장으로 가리기도 했다. 메헤메트 2세의 문화재 보호 정신을 높이 평가할만하나 현장에서 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성스러운 벽화들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훼손할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고, 내 것이 되었는데 굳이 파괴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미국이 2차 대전 때 일본 본토를 공습하면서 문화재가 많은 교토(京都)는 제외하였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역사공간과 종교공간은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세월이 흐르면서 덧입힌 회가 떨어져 가려졌던 찬란한 비잔티움 시대의 벽화와 모자이크가 드러났다. 여기에 튀르키예 당국의 벽면 복원사업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성당 벽면의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상도 그래서 선명하게 볼 수 있었는데 참 다행스런 일이다. 이곳이 이슬람사원이지만 전 세계 카톨릭 및 개신교 신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도 성당의 본체가 유지되어 있고 벽면이 복원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때마침 성당 안쪽에서는 이슬람교 신자들이 예배를 하고 있었다. 성소피아 성당은 1453년 이후 이슬람사원이 되었다가 1935년에 국립박물관으로 지정되었으나 2020년에 다시 이슬람사원으로 변신하였다. 국립박물관일 때는 카톨릭과 동방정교, 이슬람 모두의 성스러운 처소로 자리매김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었는데 다시 이슬람사원으로 지정된 것은 튀르키예의 국내정치적 요인 탓이라고 한다. 에르두안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한 지지기반 확대를 위해 기존의 세속주의에서 벗어나 친이슬람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라는 것이다. 아무튼 튀르키예의 주권사항이기는 하나 국립박물관으로 두어 종교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성소피아 성당을 관람하고 나온 일행은 부근의 식당에서 터키의 전통식인 케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케밥은 양고기, 당근, 채소, 쌀밥 등이 어우러진 요리인데 먹을 만했다.. 식당 벽에 가방 조심하세요를 5개 국어로 표기한 안내판이 있었다. 한글이 제일 위에 있는 것을 보면 한국관광객의 방문 규모가 커서 그럴 것으로 보였다. 저녁식사 후 호텔로 가 짐을 풀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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